뉴스리더 박성수 기자 |
2024~2034년으로 예정된 F-15K 성능 개량 사업이 약 1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이 사업에만 약 3조 4,6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KF-21 보라매의 개발 비용이 약 8조 5,000억 원에 불과함을 감안하면 우리 군이 F-15K 개량에 얼마나 큰 의미를 두고 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게 대한민국 공중 전력에 있어 F-15K는 당장 대체가 불가능한 독보적인 포지션이다. 이는 F-15K를 ‘전폭기’라고 분류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F-15K는 이름 그대로 전투기와 폭격기, 두 가지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다. 물론 현대의 전투기는 F-15K처럼 공대공, 공대지, 공대함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멀티롤 전투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F-15K는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뛰어나다.
먼저 전장 19.4m, 전폭 13m, 전고 5.6m에 달하는 F-15K의 기체는 KF-21 보라매와 비교해도 길이는 2.5m, 폭은 1.8m, 높이는 1m가량 거대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기에 이 육중한 기체를 최고 마하 2.5까지 가속할 수 있는 강력한 터보팬 엔진을 2기나 탑재하고 있다. 1차 도입분은 국내에서 면허 생산한 제너럴 일렉트릭의 F110 엔진이 탑재되었고 2차 도입분에는 프랫&휘트니의 F100 엔진을 직도입해 장착했다.
그리고 이 덕에 F-15K는 어마어마한 폭장량을 갖추게 되었다. 넓은 기체를 바탕으로 공대공 무장용 하드포인트만 8개소에 달하고 공대지 무장 탑재 시 주익 내측 파일런 2곳, 동체 중앙 파일런 1곳의 하드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컨포멀 연료 탱크를 탑재하면 탱크 하부와 측면에 각각 6곳씩, 도합 15개의 하드포인트를 갖추게 된다. 추가로 기본 무장으로 탑재한 20mm M61A2 기관포 1문까지 더하면 이론상 13톤의 무장을 탑재할 수 있다. 이것만 해도 웬만한 폭격기보다 뛰어난 무장 탑재 능력이다. 오죽하면 북한조차 F-35A보다 F-15K를 더 꺼림칙해할 정도다. 어차피 제대로 된 공군력을 전혀 갖추지 못한 북한으로서는 제공권 장악 따위는 진작에 포기한 지 오래다. 오히려 공군력에 투자할 재원을 땅굴을 이용한 게릴라전이나 지하화 된 미사일 사일로, 갱도화 포병에 투자하는 형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강력한 공중 우세 전투기보다 융단폭격을 날릴 수 있는 F-15K가 더 무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F-15K는 현재 우리 공군 전술기 중 자체 중량만 1.4톤이 넘는 KEPD 350 타우러스를 탑재할 수 있는 유일한 전폭기다. 대부분의 전략 시설을 지하화해 둔 북한 수뇌부로서는 그림자만 비춰도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공군에서는 이러한 북한의 지하 시설을 공격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전폭기·전투기 조합으로 전술기 편제를 구성해 왔다. 문제는 그 ‘전폭기’라는 게 F-15K를 제외하면 1960년대 배치를 시작한 F-4E 팬텀2가 고작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KF-21 Block2 개량이 완료되고 공대지 무장 통합이 끝난다면 F-15K의 막중한 임무도 조금은 무게를 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F-15K를 대체할 기종이 없는 게 현실이다. 앞으로 우리 손으로 후계 기종을 개발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F-15K를 개량해서 전폭기의 명맥을 이어 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 필요한 예산이 많아도 너무 많다. 민간사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방산 분야에서는 꼭 상대방의 절박함을 물고 늘어지며 장난질을 치는 기업들이 존재한다. 이번의 범인은 바로 보잉이다.
대한민국이 F-15K 개량을 선언하자 보잉은 미친 짓을 저질렀다. 당초 방사청은 F-15K의 핵심 개량 목표로 기계식 레이더 대신 AESA 레이더를 탑재하고 전자전 장비를 개량할 것을 발표했다. 무장 능력과 전투력은 뛰어났지만 상대적으로 둔중했던 F-15K의 탐지 능력을 향상함으로써 적 위협을 자동으로 포착, 재머 등을 살포하여 생존율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구상 자체는 F-15K라는 호랑이에 날개를 다는 격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하필이면 상대가 가격 장난질의 대가인 보잉이라는 게 문제였다. 돌연 제작사인 보잉이 F-15K의 성능 개량을 의뢰하려면 대당 9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당 900억 원 이상이면 사실 조금만 더 보태면 새 F-35A를 도입할 수도 있는 수준이다. 즉,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바가지라는 얘기다.
물론 보잉이라고 명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보잉은 2020년대 이후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으며 초거대 방산 기업이자 미국 굴지의 항공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여전히 대잠초계기나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같은 대형 지원기 분야에서는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술기는 사실상 F-15EX 하나뿐이고 민항기는 에어버스에 밀려 그로기 상태다. 어떻게든 F-15EX로 기사회생을 노려야 할 처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계획대로 F-15K의 레이더와 전자전 장비를 개량하면 미 공군에서 운용 중인 F-15EX와 사실상 성능 차이가 없게 된다. 보잉으로선 제대로 봉을 잡은 기분일 것이다. F-15EX급 레이더와 항전장비는 미국 전용이라 F-15K 개량용으로 추가로 개발해야 하고 심지어 관련 부품은 진작에 단종되어 단가가 기존 대비 3배나 뛴 상태다. 보잉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타이밍인데, 심지어 보잉이 개량 단가로 얼마나 해 처먹든 우리 쪽에서는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 오죽하면 일각에서는 보잉이 F-15K를 전량 퇴역시키고 대신 F-15EX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과도한 금액을 제시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여기에 제대로 넘어간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F-15J를 F-15EX 사양으로 개량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개량 비용에 총 200대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68대만 개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보잉의 충고에 따라 퇴역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중 일부를 해체해 엔진을 팔아서 F-15J 개량에 쓰겠다는 어이없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 어이없는 얘기는 이쯤에서 잠시 줄이고, 문제는 돌고 돌아 ‘그래서 F-15K 어쩌지?’로 돌아온다. 우리 공군에서 운용 중인 F-15K는 59기, 전략적 중요성을 생각하면 일본처럼 개량을 포기하거나 일부만 개량할 수도 없다. 하지만 다행히 대한민국에는 일본과 다른 점이 2개가 있다.
가장 먼저 우리에겐 KF-21 보라매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KF-21 개발 과정에서 습득한 자체적인 고성능 AESA 기술과 전자전 기술을 갖추고 있다. 우선 AESA 레이더 기술부터 보면 KF-21용으로 개발된 AESA 레이더는 안테나부터 반도체 송수신 모듈까지 대부분의 핵심 구성품이 동일한 주파수대역의 다기능 레이더에 100% 재적용이 가능하다. 쉽게 말해 KF-21용 AESA 레이더뿐만이 아니라 바다의 전투 함정부터, 지상, 공중 가리지 않고 국산 AESA 레이더 개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FA-50용으로 소형화된 AESA 레이더 역시 KF-21 개발 과정에서 관련 기술을 선행 습득한 덕분이다. 이는 전자전 장비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대한민국은 KF-21을 개발하면서 채프, 플레어부터 재밍 방사까지 통합 제어하는 Ew Suite를 개발했다. 이는 EWC-RWR 기능으로 위협 신호를 수신해 자체적으로 분석하여 자동으로 적의 공격에 기만·대응한다. 여기에 더해 타게팅 포드인 EO TGP는 이미 국산화하여 통합에 성공했고 대방사유도탄 II와 함께 미국의 AN/ASQ-213급 표적화 시스템까지 개발하고 있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얘기지만 쉽게 말해 전투기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데 필요한 조준기, 피아 식별 장치, 적이 나를 록 온 하는 걸 방해하는 기만 장비까지 전부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군사 전문가들은 해당 기술을 F-15K 개량에 적용하는 방향을 연구 중이다. F-15K 개량의 핵심은 기계식 레이더인 AN/APG-82(V)1을 1,000개 이상의 모듈을 탑재한 AESA 레이더로 변경하고 이를 기반으로 구식 ECM, RWR, IFF 장비를 현대화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원천 기술이 있으니 KF-21용 AESA 레이더와 전자전 장비를 변형해 탑재해 버리면 개량 가격을 극단적으로 감축할 수 있다.
물론 이쯤에서 ‘미국이 어떤 놈들인데 그걸 하락하겠냐’ 싶은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F-15K는 계약 형태가 조금 재미있다. 대한민국에서 F-15K를 도입한 1~2차 FX 사업 때만 하더라도 보잉은 F-15 생산 라인 폐쇄까지 논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산소호흡기를 달아 준 게 바로 대한민국이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굉장히 유리한 조건으로 F-15K 도입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F-15K가 동 세대 계열기 최고 성능이 된 것도 그렇고 우리의 안보 환경에 걸맞는 고유 형상 장비가 다수 탑재된 것도 이 덕택이다. 일례로 F-15K는 항공전자계통 부품 219종 중 159종을 우리 공군만의 고유 형상으로 탑재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PBL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정비 계약을 체결하면서 우리 손으로 자가 정비가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F-15K의 가동률을 상당히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자가 개량을 위한 기술 노하우까지 습득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F-15K 개량에는 어쩔 수 없이 미션 컴퓨터도 교체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투기가 습득한 정보는 모두 기계어로 변환되어 저장된다. 이 기계어를 인간의 언어로 변환하지 못하면 미사일을 운용하는 게 불가능하다.
여기에 필요한 컴파일과 디컴파일, 정보 자체를 ‘소스코드’라고 부른다. 미션 컴퓨터는 이 일련의 과정을 수행해주는 장치를 뜻한다. 다만 이 ‘소스코드’는 최중요 기밀 사항이라 무슨 일이 있어도 타국과 공유하지 않는다. 미국이 F-15K에 대한민국의 AESA 레이더나 전자전 장비 탑재를 거부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F-15K 개량에는 미션 컴퓨터 교환까지 필수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고유 형상 장비를 탑재하고 자가 수리까지 해오던 터라 소스코드 알고리즘까지는 몰라도 암호화된 정보를 교환하는 데까지는 접근한 상태다. 미국의 군사 기밀을 지키면서도 원하는 무장을 통합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수십 년간 쌓아온 대한민국의 독자 기술력이 또 한 번 난관을 헤쳐 나갈 자산이 된 셈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만들었나’ 보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를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기술의 ‘결과물’이 아닌 ‘기술’ 그 자체를 보유한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