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리더 박성수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장기화 가능성을 보이면서 전 세계가 안보 불안에 빠졌다.
불타는 옆집을 보면서 우리집에 소화기를 쟁여두고 싶은 심리라 하겠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몸값이 치솟는 품목이 있다. 바로 155mm 포탄이다. 그도 그럴 게 그간 서방 사회는 단단한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더 이상의 전면전은 없을 것이며, 최첨단 순항 미사일 한두발로 위험을 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정작 그들의 적성국이 전면전에 대비하며 온갖 구경의 포탄을 끌어모았던 것과는 무척이나 상반된 생각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비축한 포탄이 바닥을 보이자 서방 사회는 자신들이 단단히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전장의 주인은 여전히 포병이었던 것이다.
결국 서방 사회는 단기간에 대량의 포탄을 공급할 수 있고 품질까지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수급처 찾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게 바로 ‘민주주의의 무기고’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은 나토 표준을 따르면서도 휴전 국가인 만큼 대량의 포탄을 보유, 생산할 수 있고 높은 군사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1위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K-9 자주포를 앞세워 전 세계 자주포 시장을 지배한 포병 최강국이기도 하다. 딱 여기까지만 보면 그야말로 초대박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 오는 그런 상황인 듯싶다.
즉, 대한민국이 자연스레 세계 최대의 포탄 공급국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라는 얘기다. 그런데 정작 실제 상황은 정반대다. 자칫하면 맛있게 먹기만 하면 그만인 진수성찬을, 입맛만 다시다 죄다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침략 636일, 2년 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날로 격화되면서 세계적인 포탄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EU는 지난 3월 우크라이나에 포탄 100만 발을 지원하겠다고 떵떵거렸지만 정작 합의 이후 8개월이 지난 지금 실제 우크라이나에 전달된 물량은 약 30만 발 뿐으로 알려졌다.
사실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100만 발’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계획일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EU에는 충분한 자금이 있었지만 정작 돈만 있을 뿐 생산력이 한참이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중동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동을 태풍의 눈으로 만들어 버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지원 움직임이 늘어가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미국 하원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스라엘에 대한 안보 예산안을 가결 처리했다. 1차 규모만 따져봐도 총 143억 달러, 우리 돈 약 18조 7,000억 원에 육박한다. 또 EU는 지금까지 총 1억 유로, 한화 1,4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쏟아붓고 있다. EU의 지원금은 표면적으로는 가자 지구 난만에 대한 인도적 목적으로 사용되겠지만 간접적으로 전쟁 물자 비축 등 군사적 용도로 사용될 것이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문제는 이렇듯 군사적 지원으로 서방 사회의 비축 물자는 줄어가는 데 이에 반해 생산 능력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겁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155mm 포탄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하루 최대 10,000발의 포탄을 소모하고 있고 이스라엘도 가자 지구는 물론, 레바논 국경에서 헤즈볼라와 교전을 이어가면서 대규모 포격을 쏟아붓고 있다. 오죽하면 미국조차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려던 155mm 포탄 수십만 발을 급히 이스라엘에 지원하면서 ‘포탄 돌려막기’를 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쯤이면 내일 당장 155mm 포탄에 품절 딱지가 붙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딱 여기까지가 ‘문제 제기’이다. 다들 발만 동동 구르며 “어쩌지?”만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 정작 155mm 포탄 부족 문제를 해결할 놀랍도록 간단한 방법은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 포탄이야 생산 라인을 2배, 3배 늘려 그냥 많이 찍어내면 그만이다. 물론 자재 부족 등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포탄의 품질을 포기하고 양에만 집중하면 일단 물량을 찍어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뿐이다. 특히 업계 입장에서는 생산량을 늘렸다가 갑자기 전쟁이 끝나면 수요가 급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스페인, 독일, 프랑스, 체코 등 일부 국가가 유럽 내 포탄 수요의 대부분을 감당한다. 기반 인프라가 부실한 나라들이 섣불리 포탄 추가 생산에 뛰어들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일각의 전문가들은 EU의 포탄 100만 발 지원 공약이 위태로운 이유가 일부 회원국들 사이에서 수익성이 좋은 제3국과의 계약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즉, 말은 앞서고 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포탄 공동구매에는 망설이고 있다는 뜻이다.
당장 강도가 들어 옆집이 풍비박산 나고 있는 와중에도 마을에 울타리를 치거나 경보장치를 다는 일은 나 몰라라 하는 꼴이라 하겠다. 곧죽어도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건데 지독하다 싶다가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 게 당장 독일만 봐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방비를 GDP 2%까지 올리겠다고 선언했다가 은근슬쩍 발언을 취소하려 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시대전환’을 선언하며 자국 방위 정책의 대전환을 약속했다. 무려 1천억 유로, 한화 약 145조 8,000억 원 규모의 특별방위기금을 신설하고 나토의 안보 정책 목표에 맞춰 국방비에 GDP의 2%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또한 70여년간 잠자고 있던 독일 연방군을 부활시켜 러시아의 위협에 직접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만 보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GDP 2%’는 나토에서 합의한 국방비 가이드라인의 최소 조건이다. 나토는 본질적으로 안보 동맹이고, 회원국이 공동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소한 서로 GDP 2% 수준의 국방비는 유지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지난 20여년간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 그저 간신히 체면치레가 가능한 1.1~1.4%대의 국방비를 유지해 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유럽의 안보 공백은 고스란히 미국에 떠넘겨 왔다. 즉, 다시 말해 독일이 말한 ‘시대 전환’은 이제야 안보 무임승차를 그만두고 유럽의 맹주를 자처함으로써 마땅한 의무를 수행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마저도 지난 8월 국방비 GDP 2% 공약을 법적으로 규정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슬슬 끝날 기미가 보이자 은근슬쩍 다시 안보 무임승차로 돌아선 것이다.
독일이 이 모양 이 꼴인데 다른 나라는 오죽할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지간한 나라는 포탄 생산량을 늘리는 데 망설일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넘쳐나는 재고를 감당할 수 없을까 두려운 것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시장 독점 기회를 포기하더라도 포탄을 대량으로 수입해 사용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자연스러운 판탄이라 하겠다.
그 사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155mm 포탄 가격은 1년 사이 4배가 뛰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1발당 약 283만 원 내외였던 155mm 포탄 가격이 최근 10,135만 원에 거래됐다.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가늠할 수 없어도 지금의 공백은 채워야 하다 보니 생산 없는 수요가 폭발, 시장 논리에 따라 155mm 포탄의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이는 아주 기본적인 수요와 공급 논리다.
전문가들은 전쟁 이후에도 늘어난 생산 물량을 감당할 수 있는 갖춘 나라만이 현재의 폭발적인 포탄 수요를 독점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격을 갖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 그리고 미국이다.
우선 대한민국은 이미 포탄 수준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당연히 전쟁 이전부터 국제 무대에서 인기가 높다. 일례로 최근에는 사거리를 기존 40km에서 60km로 무려 50%나 늘린 신형포탄도 개발해냈다. 일명 ‘155㎜ 사거리연장탄’이다. 이처럼 질이 좋은 데, 심지어 생산량마저 압도적이다. 물론 우리 군에서 155mm 포탄 생산량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요인을 바탕으로 월간 약 20,000 발, 연간 250,000발의 155mm 포탄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우리 군의 포병 교리에 대입해 보면 최소 500만 발 이상의 155mm 포탄을 비축해 놓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340만 발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밝혀진 105mm 포탄을 더하면 거칠게 어림잡아도 전체 포탄 재고가 840만 발에 육박하다. 자주포, 견인포 가릴 것 없이 우리가 보유한 야포의 총 숫자는 5,600여 문이다. 즉, 포병 단일 화력은 세계 최대이자 최강이란 것이다. 오히려 840만 발은 정말 보수적인 최저치를 계산한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재고 부족에 허덕이는 국제 사회가 눈알을 까뒤집지고 대한민국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여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대한민국 방위 산업이 너무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다 보니 제도적 한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해외 수출에 대한 기대감과 달리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높은데, 다름 아닌 대규모 방위력 개선 사업 추진 과정에서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 운용의 효율성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방위사업법’ 때문이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모든 무기 체계는 전투용 적합 확정을 받고 양산 단계에 돌입하려면 ‘사업 타당성 조사’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 기간이 최대 6개월에 이른다. 황당한 건 이미 연구·개발 단계에서 수행 기간만 최대 8개월에 이르는 ‘사전 사업 타당성 조사’를 수행한 이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내 무기 체계는 제도적으로 총 2회, 도합 14개월에 육박하는 사업 타당성 조사가 강제되는 셈이다.
심지어 ‘여기서 끝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후에도 방위산업 물자 및 방위산업 업체 지정 등 행정 절차도 또 거쳐야 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155㎜ 사거리연장탄을 예로 들면 제도적 절차 때문에 사실상 2024년 양산을 위한 예산 반영을 포기해야 한다. 이미 개발을 끝내고 전력화 적합 판정을 받은 상태임에도 아무리 빨라야 2025년에 양산이 시작되는 것이다. 당연히 폭증하고 있는 155mm 포탄 수요에 대응하기에도 역부족이다. 최소 3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155mm 포탄 시장 독점 기회를 날려버리는 셈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제도적 한계에 가로막혀 우물쭈물하는 사이 미국이 이 사이를 파고들고 있다. 미국의 155mm 포탄 월간 생산량을 대한민국에 한참 못 미치는 1만 4,000발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포탄 수요가 폭증하자 6~8개월 만에 생산량을 28,000개까지 끌어올렸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은 2025년까지 최대 월 10만 발의 포탄을 생산할 계획이다. 대한민국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2025년이 되어야 행정 절차를 끝마치고 그제야 생산 라인 증설에 돌입할 수 있다. 미국보다 2년이나 뒤늦게 출발하는 셈이다. 당연히 그만큼 포탄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튼돈을 쓰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로서의 제도는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 세계 방산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생각하면 우리의 현 제도는 지나치게 낡았다. 이외에도 폴란드 2차 계약도 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 한도가 낮아 논란이 되었다. 결국 시중은행까지 합류하는 궁여지책을 마련해야 했다. 또 KF-21 보라매 역시 억지스러운 타당성 조사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방위 산업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실을 다져 제도적 변화도 필요한 시점이 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