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리더 박성수 기자 |
글로벌 방위 산업의 대전환기를 맞이한 최근, 한국 방위산업에 대한 관심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이 생겨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사실 2023년 초만 해도 많은 이들은 대한민국 방위 산업의 성장에 대해 ‘한-폴 방산 계약’으로 인한 깜짝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었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대공세가 실패의 기미를 보이면서 ‘전쟁 특수가 끝났으니 K-방산도 몰락할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려 최대 3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한-폴 2차 방산 계약도 연내 체결이 힘들어졌다. 여기에 더해 KF-21 초도 물량 축소 얘기까지 나오면서 ‘K-방산 위기설’은 더욱 거세게 불거졌다.
그러나 진짜 실력자는 말이 아닌, 결과로 증명하는 법. 대한민국 방위 산업은 역대 최대 규모의 수출 성과, 그리고 약 100조 원에 달하는 수주 잔고로 ‘방산 메이저리그’로 진입했다는 국제 사회의 평가를 증명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방위 산업 전시회에서, 초거대 방산 기업들을 제치고 당당히 주인공 자리를 차지할 정도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소총 한 자루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대한민국이, 그것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단시간에 글로발 방위 산업의 선수주자가 될 수 있었던 걸까?
현재 대한민국 방위 산업은 점유율 세계 4위를 목표로 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중 대립 등으로 촉발한 전 세계의 군비 확충 기조가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국제 정세에 따른 일시적 성과로만 생각하기는 어렵다. 대한민국이, 속된 말로 ‘물량 치기’에만 능한 나라였다면 지상의 전차와 자주포를 비롯해 고등 훈련기와 전투기, 그리고 함정부터 잠수함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 걸친 질적 성장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즉, 우리 방위 산업의 질적 향상은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주요 무기 수출국으로 우뚝 서게 했고 심지어 미국이나 NATO를 대신할 자유민주주의의 무기고라는 평가를 얻게 했다.
특히 해양 및 항공 전력의 강화는 미래 먹거리로 분류되는 우주 산업 역량의 토대가 되고 있다. 물론 여러 긍정적인 신호들과 장밋빛 전망에만 취해 들뜬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내부적으로도 급성장한 대한민국 방위산업 규모에 맞게 해결해야 할 제도적 과제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탓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K-방산의 토대가 결국은 미국의 군사 원조와 한미 동맹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들어 자주적인 성장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비관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뿐이랴, 심지어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방위산업 규모와 그 성취도를 볼 때 대한민국의 방산 기술을 낙관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리고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했을 때 이러한 주장 중 일부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지난 2022년 역대급 수출 성적의 상당 부분은 폴란드에서 비롯된 것이고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항공 전력의 경우 미국에서 배운 기술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생각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기술적 기반을 도움받았다고 해도 이후 끊임없는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국내외 다수의 언론과 군사 전문가들의 발언에서 비롯된 ‘4대 방산 수출 대국’은 너무나 가까운 현실이다. 흔히 말하는 뇌피셜이나 허세 가득한 포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은 한-폴 방산 계약이 주춤한 2023년 예상 수출액조차 이미 약 200억 달러, 26조 1,400억 원을 달성하며 지난해에 이어서 또 한 번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 된다. 이 지표가 유의미한 건 그저 수출 총액만 증가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한정된 국가와 일부 대규모 방산 계약만 눈에 띄던 대한민국은 고작 6~7년 만에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등으로 시장 다변화를 이뤄냈다. 양적, 질적 성장을 동시에 이루어 낸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거래국이 크게 늘어나면서 러시아, 중국, 영국, 이스라엘 같은 전통적인 방산 강국들의 무기 수출액은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은 서방의 제재와 실전에서 보여준 처참한 성능으로 무기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기존 입지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이에 따라 러시아와 중국에 의존하던 국가들이 대체 공급원을 찾기 시작했다. 이 역시 대한민국에는 호재가 되는 모습이다. 급증하는 수요와 달리 신뢰성 있는 공급처가 줄어들면서 대한민국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 개최된 미국의 AUSA 2023에서는 행사장 정중앙에 위치한 70평 규모의 초대형 부스를 대한민국이 차지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방산 전시회에서 대한민국이 주인공에 오른 셈이다.
특히 AUSA 2023이 육상 전력 박람회였던 만큼 대한민국 전차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불과 수년 전, 우리가 만든 무기 체계가 과연 세계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욱 의미심장한 일은 따로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 방산 대기업들 뿐 아니라 중소, 중견 기업들마저 관심의 중심에 있었단 것이다. 그 중 전시회 마지막 날까지 주목받으며 관객몰이했던 국내 한 중소기업은 자신들이 선보인 스텔스 도료의 기술력을 인정받아 미 육군 연구기관 및 방산 기업들과 기술협력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불과 70여 년 전만 해도 소총 한 자루 만들지 못했던 대한민국이었기에 오늘날의 성과는 더욱 남다르다. 이는 상비군만 약 130만 명에 달하는 북한과 맞서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안보 환경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성과다.
전례 없는 국제 위기 속에 가장 실전적이고, 가장 현실에 가까운 무기 체계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글로벌 스테디셀러인 지상군 무기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이 토대가 된 함정 분야, 그리고 1970년대 기술 이전 생산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쌓아 올린 항공 전력 기술까지, 모든 방산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쉽지 않은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해 온 대한민국이기에 비로소 국제무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사실 육, 해, 공 전 분야에서 자체적으로 개발, 생산한 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이며 성능까지 우수한 경우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그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인 것이다. 또한, 그러니 대한민국이, 냉전 이후 자국의 방위 역량을 축소해 왔던 유럽의 전통 방산 강국들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전 세계적 방산 수요 폭발을 기회로 삼을 수 있던 것이라 하겠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움켜쥘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후발 주자인 대한민국이 오늘날 전통적 방산 강국들과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독보적인 특징은 또 있다. 대한민국이 빠른 생산력을 기반으로 현지화에 적극적이라는 것도 글로벌 무기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게 된 요건 중 하나다. 현지화를 통해 다양한 안보 환경에 적응하고 관련 기술을 빠르게 흡수, 성장시켜 온 것이 현재 K-방산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군사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의견이기도 하다. 그들은 효율적 생산 방식에 기반한 대한민국 무기의 가격 경쟁력과 신속한 납품, 뛰어난 성능의 해외 무기들과의 협력 및 경쟁이 만들어 낸 우수한 품질이 K-방산의 강점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이 기술이전과 현지화에 적극적일 수 있던 것도 이러한 대한민국 방산의 특징 때문이다. 기술을 이전한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개발 속도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은 데다 어찌어찌 따라잡는다 해도 결국 아류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여기에 더해 대한민국은 군수 지원마저 굉장히 안정적이다. 대한민국은 과거 KT-1 웅비, T-50 등을 수출한 이후에도 후속 군수지원을 위한 별도 협의체를 구축하여 인도네시아, 튀르키예와 같은 수입국에 기술 지원을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국산 항공기를 수입한 구매국들에 운영 및 정비 기술과 함께 축적된 안전 노하우 등도 공유하고 있다. 일례로 폴란드의 경우 기술지원 업무를 담당할 해외 기지 사무소를 개소하고 24시간 밀착, 정밀 지원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군수지원 프로그램은 해당국의 전력 증강과 대한민국산 무기의 가동률 향상을 끌어내 대한민국산 무기를 선호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괜히 한번 한국산 무기를 사용해 보면 두 번, 세 번 추가 도입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다.
대개 군수지원은 단순히 무기의 보급, 정비 등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요국의 입장에선 무기 체계의 수명주기 증가와 가동률 향상까지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바로 이런 점을 노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군수 지원으로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방산 강국들의 수출 사례를 보면 단순한 부품 조달이나 정비 지원조차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대한민국이야 말로 이런 ‘갑질’ 때문에 골머리를 썩어왔다.
방산 분야에서는 안보와 군사 기밀을 핑계로 유지 보수에 대한 의무를 나 몰라라 하는 악습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걸 끊어냈다. 그러니 정비 및 부품 조달은 물론 기술 지원과 교육, 훈련까지 제공하는 대한민국의 군수 지원 프로그램이 수요국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후속 군수 지원이 수출 무기 체계의 가동률을 높이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의 창정비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특히 항공 전력의 경우 다양한 구성품을 빼내어 손상 여부를 정밀하게 확인한 후 수리나 교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를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과 창정비 능력을 확보해 수요국들이 안정적인 군수 지원을 제공받도록 하고 있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갑질을 일삼던 기존 방산 강국들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르니, 대한민국이 글로벌 방산 시장의 신흥 강국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전방위적 노력에도 불구, 대한민국 방산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방위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평가되는 제도적 한계와 주요 기업들에 집중된 무기 판매 계약은 K-방산의 질적 향상을 저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수요국을 위한 금융, 수출 지원과 중소 방산 업체들을 위한 체계적인 육성책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KF-21의 사업타당성조사 사건의 경우에도 정부연구기관이 KF-21 양산을 방해하고 국가의 신뢰도마저 훼손하고 있다는 비난을 초래했다. 만약 KIDA의 주장대로 KF-21 초기 양산 물량이 줄어들게 되면 당장 노후 전투기 대체가 필요한 공군은 물론 향후 수출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방위산업의 특성상 생산 물량 감소는 단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는 탓이다. 이는 사업 참여 업체들의 공급망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폴 2차 방산 계약으로 드러난 부족한 금융 지원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과도한 지체상금과 같은 규제가 제한되고 수출 금융의 한도가 늘어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 무기는 성능과 가격 경쟁력, 신속한 납기라는 주요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수입국의 입장에서는 동일 예산으로, 비슷한 성능을 가진 더 많은 무기를 살 수 있어 효율적인 예산 집행이 가능한 데다 빠른 인도가 가능하다고 인식되는 것이다. 적절한 수출 지원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장점들도 빛을 잃을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 무기의 수출 성장세가 그저 전쟁이라는 일시적 이벤트에 기인한 것이라는 오명을 벗고 방위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함이며, K-방산이 세계를 뛰어넘기 위한 필요 전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