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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믿고 따라와!" 폴란드, 수도부터 韓 K-2 쫙 깔았다

 

뉴스리더 박성수 기자 |
루마니아가 K-2 흑표가 아닌 M1A2 에이브람스 도입을 확정 지었다. 미국의 해외군사판매 FMS 프로그램을 통한 이번 사업은 M1A2 에이브람스 54대와 같은 양의 M1A1 차대 그리고 16대의 장갑 공병 차량 등을 포함해 총 25억 3,000만 달러, 한화 3조 2,700억 원이 넘는 초대규모였다.

 

심지어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노르웨이 사태를 떠올리는 분들도 많으신 걸로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게 2023년 7월부터 국내외 외신들이 앞다퉈 루마니아 신규 전차 도입 사업에 K-2 흑표가 유력하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물량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폴란드 시즌2’라며 기대감이 높았다. 그런데 갑자기 루마니아가 M1A2 에이브람스 도입에 3조 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또 다 된 밥에 코 빠트린 것 아니냐는 불안이 불거진 것이다. 마치 노르웨이의 차기 전차 도입 사업에서 K-2 흑표가 유력후보로 거론되었다가 독일의 정치적 압박에 최종 탈락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보면 확실히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도 같다.

 

그러나 정작 방산 업계는 쾌재를 부르고 있다. 전문가들도 오히려 루마니아가 M1A2 에이브람스를 도입하면서 K-2 흑표 도입 가능성이 부쩍 커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게 과연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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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업계에서는 루마니아가 M1A2 에이브람스를 도입할 계획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시기의 문제였을 뿐.

 

루마니아가 M1A2 에이브람스 도입을 검토 중이었던 건 지난 2023년 3월의 일로, 당시 독일 레오파르트2A7과 저울질하다 끝내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즉 이미 계약을 진행 중이었던 사업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어떤 전차를 도입했느냐’가 아니라 ‘몇 대의 전차를 도입했느냐’이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루마니아가 3조 2,700억 원을 들여 도입하기로 한 M1A2 에이브람스 수량은 고작 54대, 나토 편제 기준 1개 전차 대대에 불과한 물량이다. 루마니아가 현재 운용 중인 400여 대의 구식 전차를 대체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실제로 루마니아는 최소 300~350대 물량의 2차 전차 도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K-2 흑표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건 바로 이 사업이다. 다시 말해 루마니아의 사소한 움직임에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루마니아가 대규모 M1A2 에이브람스 도입을 결정지으면서 차기 전차 사업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3조 원이 넘는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선 루마니아의 국방비 증액이 불가피했을 테니, 거꾸로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2차 전차 도입 사업이 축소될 걱정을 덜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당장 루마니아가 M1A2 에이브람스 도입을 결정지었다 하더라도 실제 인수는 몇 년 후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절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M1A2 에이브람스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루마니아 기갑 전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TR-85 주력 전차의 노후화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TR-85 는 1986년 전력화를 시작해, 개발 된지 벌써 40년 가까이 된 고물인 데다 태생부터 최악의 연비, 파워팩 결함, 만성적인 누유로 골머리를 썩였다. 그나마 1990년부터 현대화 개수를 시작해 간신히 타고 다닐 수준은 되었지만 원본이 1958년에 소련에서 개발된 T-55다 보니 개량 한계점에 도달한 지 오래다. 오죽하면 군사 전문가들은 TR-85를 서구권 기준 2세대 전차로 분류할 정도이다. 잘 쳐줘 봐야 냉전기 운용하던 M60이나 레오파르트1과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포는 100mm 강선포라 현대 포탄과 호환이 불가능한 건 물론 2세대 주력 전차의 장갑도 관통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한 수준이다. 사실상 현대 주력 전차와 비교하면 ‘종이 전차’인 셈이다. 루마니아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기갑 전력을 재편하고 싶은 심정일 것인데, 사실 미국과 M1A2 에이브람스에는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일례로 최근 폴란드는 제1보병사단을 신규 창설했다. 말이 좋아 보병 사단이지 예하에 4개의 기계화 여단을 배속하면서 사실상 기갑사단이나 다름없는 편제를 꾸렸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배치된 장비들이다. 폴란드는 기존의 계획과 달리 K-2 흑표를 제1보병사단에 배치했다.

 

그간 폴란드는 칼리닌그라드에 면한 북부 지역에 좋은 K-2 흑표를 배치했고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를 면한 동부 지역에는 넓은 타격 범위와 강력한 화력을 갖춘 K-9 자주포·K-239 천무를 배치했다. 제1보병사단이 위치한 폴란드 동부 지역은 당초 M1 에이브람스가 배치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M1 에이브람스 납기가 늦어지면서 모든 일정이 꼬여 버렸다. 폴란드는 미국과 2차례에 걸쳐 M1A2 SEPv3 235대, M1A1SA 116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본래 계약대로라면 못해도 이 중 56대가 2023년 중 폴란드로 인도되어야 했다. 2024년 2월 예정된 60대의 물량까지 치면 적어도 내년 초에는 M1 에이브람스로 이루어진 2개 전차 대대를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정작 지금까지 폴란드가 인수한 M1 에이브람스는 고작 15대에 불과하다. 납기가 세 차례나 연기된 탓이다. 결국 폴란드는 동부 벨라루스에 기동력은 떨어져도 방어력이 높은 M1 에이브람스를 배치하려던 전략을 깡그리 갈아엎고 K-2 흑표를 전면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폴란드와 군사적으로 굉장히 밀접한 루마니아는 이 어이없는 해프닝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그런 루마니아가 M1A2 에이브람스 계약을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는 건 하루라도 빨리 2차 도입 사업을 시작해서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이다. 간단히 말해 미국만 믿고 있다 초가삼간 죄다 불탈 꼴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루마니아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대한민국과 K-2 흑표뿐이다. 실제로 다수의 군사 매체가 K-2 흑표의 최대 장점으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높은 성능임에도 생산 속도가 독보적으로 빠르다는 점을 꼽는다. 최근 로이터의 보고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한때 4,000대의 레오파르트2를 모두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력이 높았지만, 현재는 자국에서 운용 중인 350대도 유지 보수가 위태로울 지경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18년 헝가리와 계약한 레오파르트2A7 44대는 간신히 2023년 여름에 들어서야 첫 생산을 시작할 수 있었다. 노르웨이 역시 2022년 레오파르트2A7 도입을 확정 지었지만 정작 양산 및 인도는 2026년부터로 계획되어 있다.

 

미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공식적인 연간 생산량을 미공개로 두고 있지만 M1 에이브람스를 생산하는 곳은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단 하나의 공장 뿐이다. 그나마 2016년 월 1대가 고작이었던 생산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회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극심한 인력난과 생산라인 증설의 불확실함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 라인을 유지하고 있었다. 휴전 국가라는 특성 때문. 여기에 도합 980대에 달하는 폴란드발 방산 계약과 국내 소요분 4차 양산 계획이 겹치면서 생산라인 증설에 돌입한 상태다. 이를 감안하면 한 해에 최소 100대 이상의 K-2 흑표를 양산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루마니아를 제외하더라도 오만, 이집트, 인도, 슬로베니아, 체코 등이 K-2 흑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어림 잡아도 대한민국 혼자 생산하는 전차의 수량이 미국과 독일을 합한 것보다 많을 지경이다.

 

물론 이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단순히 빠르기만 했다면 K-2 흑표는 금세 뒤처졌을 것이다. K-2 흑표가 유럽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사례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지난 10월 말 우크라이나는 마침내 미국이 약속한 M1 에이브람스 31대를 지원 받았다. 이는 고착화된 전선의 ‘게임체인저’ 될 것이라 주목받았던 만큼 상당한 기대를 받았다.

 

그런데 시기가 영 좋지 못했다. 하필이면 라스푸티차가 시작되고 전선에 도착한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에이브람스가 동유럽의 진창에 갇혀 제힘의 1/10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코넷 대전차 미사일의 한 끼 식사가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루마니아 역시 우크라이나 못지않다는 것이다.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2가지 특산물을 꼽으라면 지체 없이 소금과 진흙을 꼽을 정도인데 오죽하면 루마니아 콘스탄차에서는 보령 머드 축제처럼 매년 진흙 축제가 열린다. 게다가 루마니아는 국토 한가운데 알프스산맥이 지나고 있어 거친 산악 지형, 숲, 평원을 모두 관찰할 수 있다. 진흙부터 산과 숲까지, 전투 중량이 최대 65톤에 이르는 M1 에이브람스로는 원활한 기동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반면 K-2 흑표는 대한민국의 전차답게 70%가 산악 지형인 한반도에 초점을 맞춰 우수한 험지 주파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덕에 전투 중량이 55톤 내외라 M1 에이브람스, 레오파르트2와 동일한 1,500마력 엔진을 탑재했음에도 톤당 마력비가 27.3hp/t로 월등하다.

 

또한 세계 최초로 반능동 유기압식 ISU와  동적 궤도 장력제어 시스템, 통칭 DTTS를 탑재했는데요 이 덕에 불규칙한 노면에 따라 시시각각 궤도 장력과 현수 장치의 유기압을 제어하고 주행에 필요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산악 지형이나 장애물, 진흙 등 어떠한 험지도 안정적으로 주파할 수 있게 되었다. K-2 흑표가 기동 간 사격에서 높은 명중률을 보이는 것도 반능동 유기압식 ISU와 DTTS로 차체 진동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를 가장 먼저 알아본 게 바로 폴란드다.

 

그런데 최근 폴란드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한-폴 2차 방산 계약에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폴란드 야권 연합은 벌써 대한민국 무기 체계에 시비를 걸고 있다. 심지어 야권 연합의 대표 중 하나인 체스와프 므로체크 의원은 최근 FA-50의 성능에 어설픈 의구심을 제기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폴란드군 그리고 폴란드의 여론은 이제 완전히 대한민국 무기체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섰다. 실제 운용을 해 본 결과, K-2 흑표야말로 자국의 지리와 안보 환경에 딱 맞는 무기 체계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일례로 최근 폴란드 국영 방송 TVP는 “야당 연합이 총선 이후 대한민국과 맺은 대규모 방산 계약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러시아는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통해 폴란드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 국방력 강화뿐임이 명확해지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정치가 아닌 안보를 보라고 쓴소리를 한 것이다.

 

루마니아 역시 최근 군비총국장의 인터뷰에서 어떠한 정치적 외압, 국가 간 파트너십 없이 군이 요구한 조건을 최우선으로 차기 전차를 선정할 것이라 천명했다. 대한민국과 K-2 흑표는 오히려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결정이다.

 

더군다나 루마니아는 폴란드의 사례를 참고해 현지 생산까지 우선순위에 올려두고 있다. 서두에 말했듯이 기술력이 부족해 다 썩어가는 TR-85를 꾸역꾸역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서러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월등한 화력과 방어력, 독보적인 납품 속도와 기동력 그리고 대한민국의 적극적인 현지화 공략까지 모든 게 대한민국에 유리한 상황이다. 과연 루마니아의 차기 전차 사업이 대한민국에 통하면 전 세계에 통한다는 걸 입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